실리콘밸리 비밀일기 Ep 5: 실리콘밸리에서의 첫 투자유치

문지원 대표와 나는 이때까지 개인 앤젤 펀딩을 제외하고 총 4차례의 해외 투자 유치 과정을 겪었는데, literally 수백 페이지 분량의 복잡한 계약서가 필요했던 2, 3, 4번째 투자 유치에 비해서 첫번째 투자 유치의 legal process는 놀랍도록 간단하고 빨랐다.

이 첫 투자는 2008년 2월 미국 벤처캐피탈 Charles River Ventures 로 부터였다.  액수는 25만불이었는데, 이는 미국 기준으로서는 큰 액수가 아니어서, 또 우선주 지분 투자가 아닌 Convertible Note 형식의 투자인지라 Series A Round 라고 하지 않고 seed round 라고 표현하겠다.

2008년 초는 다행히 벤처 투자 경기가 비교적 좋은 시점이었다.  2006년말 Youtube가 Google 에 $1.65 Biliion 에 인수된 이후 실리콘 밸리 벤처 업계는 주욱 흥분 상태였다.  2007년에는 상당수의 VC 들이 아주 초기 단계의 start-up 에 투자하는 seed 투자 프로그램 또는 유사한 incubation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일례로 2007년에 나를 포함한 Stanford 학생들이 앞다투어 지원했던 한 incubation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투자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Lightspeed Ventures 라는 한 유명 VC 에서는 여름 방학 동안에 실시하는 incubation 프로그램이었다.   팀 구성과 함께 사업 계획서를 제출하면 VC 에서 심사하여 10팀 정도를 선정한 후, 방학 동안에 약간의 지원금과 함께 VC 오피스에 일하는 공간을 내어주고 멘토링도 같이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지원에 대한 댓가는 전혀 받지 않았다. (단 1% 의 지분도 받지 않음.)  여기에 선정된 학생들은 summer intern 대신 (미국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여름방학 3개월간summer intern 을 하며 경력을 쌓는다) VC 의 mentoring 하에 자신의 start-up 을 test drive 하는 것이다.  물론 VC 도 노리는(?) 것이 있으니까 이런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인데 이 3개월간 get to know each other 하는 과정을 통해 좋은 팀이 보이면 침 발라두려고 하는 것이다.  나의 MBA Classmate 중에서도 2팀이나 여기에 선정되었었는데, 불행히도 우리 팀은 2007년 여름에 이 기회는 얻지 못하였다.

시간이 좀더 흘러 2008년 초가 되자 2007년부터 문지원 대표가 개발하기 시작한 running prototype 은 점점 흥미로운 모습으로 발전하여 드디어 남들한테 보여 주었을 때 Wow! 반응을 끌어 내기 시작하였다.  때 마침 우리의 눈에 띈 seed funding program 이 있었는데, 그것이 Charles River Ventures 에서 만든 Quick Start Program 이라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개요는 당시 이 VC 의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대대적으로 홍보되었었는데, 아주 early stage 의 회사에 회사당 5만불~25만불 정도의 seed money 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계약 조건은 회사 마다 액수만 차이가 있고 다른 조건은정확히 동일하게 템플릿화 되어 있었다.  방식은 지분 투자를 하는 것 아니라 Convertible Note (전환 사채 개념) 으로 빌려주는 것이다.  이 채권은 나중에 회사가 더 성장하여 $1.5M 이상 규모의 Series A Round 지분 투자를 받게 될 때 같이 지분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지분으로  전환시의 valuation 은 Series A 투자자에게 적용되는valuation 보다 20%~25% 정도 낮게 전환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만불을 Convertible Note 으로 seed 투자를 받고, 나중에 Series A 투자자가 $4M valuation 으로 Series A 투자를 하게 되면 이 20만불은 $4M x 0.8 = $3.2M 의 valuation 으로 지분 전환이 되고, 이 Convertible Note 투자자는 $200K/$3.2M = 6.25% 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간단히 정리를 하면, Series A 투자자에 비해서 20% 좋은 조건으로 지분을 취득하게 되는 것이다.

어째튼 우리는 이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maximum 금액인 25만불의 투자를 받게 되었는데 어떤 과정을 통하여 투자 결정을 이끌어내게 되었는지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 하도록 하고, 이러한 Convertible Note 투자 방식에 대해 조금 더 부가 설명을 하겠다.

다시 정리하면, Convertible Note 투자는 처음에는 채권이었다가, 이후의 equity financing 시에 (지분 투자 라운드) 지분으로 전환 (conversion)이 되는 방식의 투자이다.  Conversion 시의 valuation 은 다음 지분 투자 라운드 (Series A 투자등) valuation 에 따라서 결정된다.   하지만 Convertible Note 투자자는 Series A 지분 투자자보다 훨씬 일찍 투자를 하는 것이라 Risk 가 훨씬 더 높으므로 같은 valuation 으로 전환이 되는 것은 말이 안되니 보통 15%~25% 의discount rate 이라는 것을 둔다. 지분으로 전환이 될때 discount rate 만큼 유리한 가격으로 전환이 되는 것이다.

또, 이 정도의 discount 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니 보통 Cap (상한선) 이라 추가적인 안전 장치도 두어서 지분 투자 round 에서의 valuation 이 아무리 높아진다 하더라도 전환 valuation 이 어느 이상을 넘어갈 수 없도록 선을 그어 놓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Series A 지분투자자가 $50M valuation 으로 투자를 하더라도, $10M 으로 Cap 을 정해놓으면 20% discount rate 을 적용한 $40M 이 아니라 $10M valuation 으로 전환이 되는 것이다.  Cap 을 정해 놓는 것은 Convertible Note 투자자 입장에서는 훨씬 초기 투자자로서의 Risk 를 감안했을 때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Cap 이 있는 Convertible Note 이 투자자나 Entrepreneur 모두에게 꽤 합리적인 seed money 투자 방법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고, 실제로 많은 seed stage 투자가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  Convertible Note 이 Seed 투자 용으로 자주 애용되는 이유는 절차 및 법적 관계의 간편함도 한 몫한다.  우리의 경우도 투자 결정이 파트너 회의에서 내려지자 마자 1시간 뒤에 VC 에서 A4 지 한장짜리 계약서를 가져오더니 싸인하라고 내밀었다.  벤처 경험이 많은 classmate 친구에게 가져가서 10분간 같이 리뷰하며 싸인해도 될까? 라고 물어본 후 “당연” 이라는 답변을 듣고나서 싸인해서 제출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통장에 25만불이 입금되었다.

헌데, 특이한 점은 CRV의 “Quick Start” Convertible Note 은 Cap 이 아예 없는 조건이었다.   Cap 이 전혀 없다는 말은 극단적인 상황을 예를 든다면, 20만불을 투자 받은 후, 한동안 추가 투자를 받지 않고 회사가 너무너무 잘 되고 미친듯이 성장해서 그 후 Series A 펀딩을 $100M valuation 으로 받게 되면 이 Convertible Note 의 투자자는 20% 할인 가격인 $80M valuation 으로 전환되는 것이니 투자자는 단 0.25% (=200K/80M) 의 지분밖에 확보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CRV 와 같은 VC 에서는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런 Quick Start Loan Program 이라는 것을 만들었을까?  고작 20% 의 discount rate 을 얻자고, super early stage 의 회사들에 돈을 이렇게 뿌려도 되는걸까?  이게 과연 남는 장사일까?  이번 편의 이야기가 다소 길어져 버렸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편에서 이어서 조금 더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실리콘밸리 비밀일기 Ep 4: 내가 부러워 했던 나의 친구들

오늘은 내가 부러워했던 Stanford MBA Classmate 한명에 대해서 써 보려고 한다. (부러워했던 여러명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한명이다) 지난 Episode 에서 잠깐 언급하였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쉽게, 그것도 학교를 다니는 도중 펀드레이징에 성공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소위말하는 “종잇장 한장으로 펀드레이징을 하는 신공”을 발휘한 케이스이다.  매출은 고사하고, 유저도 없고, 간단하게나마 동작하는 웹사이트도 존재하지 않았다. VC에게 제시한 것은 파워포인트 몇장과 겉으로는 동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작하지 않는 raw prototype 정도였다.

이렇게 아이디어만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다.  대표적인 예가 serial entrepreneur 들의 경우인데, 이미 한두번 성공을 한 사업가가 해당 VC 와 이미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있고 친한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는 투자자들이 서로 돈을 받아 달라고 돈을 싸들고 덤비는 케이스도 많으니 그야 말로 “종잇장 한장으로 펀드레이징”이 가능한 케이스이다.  예를들면, 트위터 창업자, Zynga 창업자, 이런 이들이 Serial Entrepreneur 의 대표적인 예인데, 이들은 트위터, Zynga 를 창업하기전에 이미 entrepreneur로서 상당히 successful 한 track record를 가지고 있었다.  또 다른 케이스는 앤젤 투자인데, $100K~$300K 규모의 엔젤 투자는 아이디어만 있는 first time entrepreneur 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가는 경우들이 간혹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러시아에서 온 나의 Stanford MBA Classmate인 S는 Flash 를 사용해서 3일만에 만든 prototype 과 파워포인트 몇장으로 미국에서 가장 명망있는 VC 인 Sequoia 에서 $4M 가량의 거금을 받아내었다.  MBA 1학년 여름방학때의 일이었다. 그리고는 펀딩과 동시에 과감하게 MBA 를 자퇴하고 (휴학도 아닌…) 회사를 창업하였다.  문지원 대표와 내가 펀드레이징을 했던 고난의 과정에 비하면 이건 당췌 말도 안되는 과정이었다.

사실 이 친구 S는 분명히 exceptional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아주 재미있는 백그라운드를 가졌다 (재미있는 백그라운드를 가진것도 능력이다).  그는 Stanford MBA 최연소 합격자이다. 당시 미국나이로 21살이었다. MBA과정이 보통 최소3년~7년의 직장 경력을 가진 사람들만을 뽑는것을 고려해 보았을때, 말도 안되는 나이다.  보딩스쿨에서 월반에 월반을 거듭하며 졸업하였고, 미국 코넬대학에 입학해서는 2년반만에 조기졸업을 했다. 그것도 학교를 다니며 무역/유통 사업까지 하면서 조기졸업했다. 졸업후 MBA 에 입학하기 전까지 6개월의 공백동안 구글에서 근무하기도 하였다. 1학년 학기중 한번 Entrepreneur Club (창업동아리)에서 마련한 10명정도 인원의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2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50대의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을 포함하여 백발 성성한 업계 Guru 들을 smooth 하게 lead 하는 노련한 대화술을 구사하는 모습에 당최 보통 인간이 아니구나라는 깊은 인상을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영화에 나오는 영국귀족학교의 거만한 부잣집 학생 (주로 악역으로 나오는) 처럼 생긴 이미지에, 한편으로는 앳되고 geekish 한 이미지, 그러면서 영국식 영어를 묘한 느낌으로 구사하며 50대 좌중을 리드하는 이 러시아인에게 VC들이 홀딱반한것이다. 결국 비지니스는 사람이 하는 것이니, 아이템도 아이템이지만 사람에게 fall-in-love 되는것 만큼 강력한 무기가 어디있으랴.

펀드레이징은 성공적인 사업을 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따라서 펀드레이징의 성공이 사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친구가 투자를 받았던 그 비지니스도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이지는 못했고, 얼마 후 이 친구는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이 스토리의 포인트는 펀드레이징에 성공한 그의 skill set 에 초점을 맞춘것이다.  해당 사업의 성패 여부에 상관없이 이 친구의 능력은 충분히 respect 할만하였고, 이 친구는 그 후 러시아로 돌아가 또 다른 멋진 사업을 런칭하였다고 들었다.

남의 이야기는 이쯤하겠다. 다음편 Episode 부터는 다시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맞닥드려야 하는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의 케이스가 “A4지 한장 신공 부리기”를 할 여건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하나?  라는 주제로 넘어 가볼까 한다.

실리콘밸리 비밀일기 Ep 3: 한국사람이 미국에 건너가 VC펀딩을 받는것이 가능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워낙 변수가 많아 단순한 정답은 없다. 내가 느끼기에 이 질문은 “저는 손가락이 4개밖에 없는 데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과 유사하다.

장애인을 대놓고 차별할 수 없으니 “당연히 가능하지. 너의 가능성을 믿는다. 근데 우리랑은 Focus가 안맞는것 같고. 하지만 관심이 있을 다른 투자자들이 많이 있으리라 믿어” 라고 애둘러 거절하는 것이 가장 전형적인 거절 패턴이다.

“손가락 하나 더 만들어오면 투자해줄께” 라고 말하는 VC들도 있다.  정직한 거절이다. 물론 이것은 100% 거절은 아니고 99% 거절이다. 없는 손가락을 만들어 오는 기적을 보여준다면 당신의 가능성을 인정해주겠다라는 말이니.

때로는 손가락4개로 멋진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오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참으로 웃긴 소리다. 가능성을 믿고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돈을 지원해 달라는 것인데, 멋진 연주를 할 수 있다는걸 증명해오라니?  그러면 벤처캐피탈이 대체 왜 필요하단 말인가?

위와 같은 비유를 들면, 미국에서 비지니스를 함에 있어 ‘한국인임’이 장애에까지 비유될만한 것인가라고 의문을 갖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은 이는 분명한 장애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내가 여기서 말하는 ‘한국인’이라는 정의는 분명하게 해야할 듯 하다. 미국에서 상당기간의 어린 시절을 보냈고 미국 Top 대학에서 학부를 졸업해 “native 영어 구사력 + 미국내 강력한 인맥” 을 이미 갖춘 케이스는 여기서 내가 말하는 ‘한국인’의 정의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문지원 대표와 나는 서른이 넘는 나이에 미국에 대학원으로 유학을 간것이 미국물을 처음 먹어본 케이스이니 분명히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미국내 창업에 뛰어든 케이스이다.

VC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실리콘밸리의 미국인들에게도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다.  일례로, 벤처캐피털리스트 1명이 1년에 1천개 넘는 투자제안서를 받아보는데 그중에 실제 투자 집행으로 이어지는 건은 다섯손가락 이내라는 말도 있다.  ‘정상인’들에게도 하늘에 별따기인 게임에 장애를 가진이들이 뛰어드는 것이 쉬울리 없다.

다음 Episode 에서는 부러운 나의 친구들 (Stanford MBA Classmates) 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써보고자 한다.  문지원 대표와 나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쉽게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유치해낸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다음이야기: Episode 4 – 내가 부러워 했던 나의 친구들

실리콘밸리 비밀일기 Ep 2: 실리콘밸리의 원동력은?

세계 최고의 혁신 센터라 불리우는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혹자들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최고의 인재들, 혹자들은 풍부한 벤처캐피탈 리소스나 투자 환경 등을 꼽기도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실리콘밸리에 벤처 자본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세계 각지에서 모인 우수한 인재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왜 그러한 우수한 인재들이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대기업으로만 몰리는 것이 아니라 벤처를 창업하거나 또는 초창기 벤처에서 일하려 하는 것일까?  스탠포드 MBA에 있을 당시, 이름대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 IT 회사의 채용담당자와 이야기한적이 있다.  그분 왈, 스탠포드 Computer Science 석박사 출신 인력들을 채용하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와 같다고 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창업을 하거나 또는 초창기 벤처회사에 합류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라 했다.  도대체 그들은, 소위 한국식 표현을 빌려, 그들 S급 인재들은 왜 벤처로 향하는 것일까?  실리콘밸리의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푸는 열쇠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있다고 본다.

문지원 대표와 나의 시각은 이 모든 것의 가장 근본에 “꿈”이라는 에너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앞으로 하나하나 이야기 하겠지만 실리콘밸리는 아주 여러가지 의미에서 “꿈을 꿀 수 있는 사회”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첫째, 꿈이 현실화 될 수 있는 확률이 세계 어느곳보다 높은 사회이며, 둘째, 그 꿈이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사회이다. 한마디로 건강한 사회라는 것이다.

건강한 사회에는 꿈이 있다. 건강한 사회라면 내가 열심히 하면 신분 상승 또는 인생이 획기적으로 달라지리라는 꿈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변방의 조그만 성주도 패자(覇者)의 꿈을 꿀 수 있었던 춘추전국시대에는 백가쟁명의 문명이 꽃 피어났다. 대한민국이 과거 50년간 기적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 본다.  한 사회의 기적적인 발전뒤에는 그 구성원들의 초인적인 노력과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독일로 간 광부, 간호사들이 적어도 내 인생이 또는 내 가족, 내 후대의 인생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거라는 꿈이 없었으면 과연 그런 초인적인 희생을 감내할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의 기적적인 발전은 대다수의 국민이 꿈을 가지고 초인적인 노력을 했었기 때문일것이다.

최근의 한국 사회는 그 동력이 많이 약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원래 가진 재산이 없는 사람은, 젊었을때부터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특수한 직종에 입성하지 않는 한, 서울 강남에 집 한채 살 수 있는 인생 역전을 꿈꾸기가 너무나 힘들어졌다. 몇 안되는 고액연봉 직종이 아니고서는 인생 역전이 힘들어졌다는 사실 자체도 문제이지만 그러한 고액연봉 직종에 대한 접근성 또한 문제인듯 하다.  소위 말하는 고액연봉 직종이라함은 의사, 변호사, 회계사, 일부 금융권/컨설팅 직종, 일부 외국계 회사/대기업 특수 포지션 정도인듯 한데 (엔지니어들이 낄수 있는 영역이 없다는 문제는 별개의 이야기로 치더라) 이런 특별한 직군에 입성을 성공하는 사람들의 분포를 보면 점점 시골 깡촌에서 머리와 노력하나로 성공한 “개천의 용”들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좀 옆으로 샜는데 요지는 한국 사회가 능력과 노력만으로 신분상승이나 인생역전을 꾀하기가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진 지루하고 꿈 꾸기 힘든 사회가 된듯 하다는 점이다. 이는 사기 떨어진 군사들을 데리고 전쟁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이에 대한 해결이 없이는 더 이상의 기적적 발전을 이루어 내는 사회적 동력의 창출이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실리콘밸리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오해의 소지가 있어 잠깐 첨언하자면, 우리는 여기서 미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아주 일부인 실리콘밸리라는 특수한 곳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혹 실리콘밸리에만 꿈이 있고 한국에는 꿈이 없나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한국에도 기적과 같이 꿈을 이루는 사례들이 많다. 맨손으로 시작하여 기적을 만들어낸 정주영과 같은 분이 있고, 맨손으로 시작하여 크고 작은 성공을 이룬 많은 분들이 있다.  문제는 보통 사람들이 느끼기에 이것들이 그저 TV 에서 신문에서 나오는 남의 이야기일 뿐인지 아니면 나에게도 일어날수 있는 현실성 있는 이야기인지이다.  과거 정주영 회장 같은 분을 비롯하여 많은 난세의 영웅들이 탄생하였지만, 계층이 고착화되며 난세 영웅 스토리는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90년대 말 벤처 붐이 일었지만, 벤처의 성공스토리는 말 그대로 가물에 콩나듯일 뿐이다.  어쩌다 신문에 나는 스토리는 그야말로 정말 어쩌다 나기 때문에 너무나도 특별한 딴 세상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실리콘 밸리는 바로 이점이 다르다. 크고 작은 성공의 스토리, 역전의 스토리가 바로 내 주변 classmate, 나의 친구, 친구의 친구들에게 종종 빵빵 터져주는 것이다.  “기억나지? 그때 그넘. 맨날 수업 빠지고 술먹으면 개 되던 넘. 걔네 회사 지난번에 5천만달러에 인수되었데…” 이런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신문에서 들으면 남의 이야기인 순수한 꿈이요, 내 주변에 실제로 발생하면 현실화 가능해 보이는 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람들이 꿈을 꾸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사람들이 왜 꿈을 꿀 수 있는지에 대해 5가지 정도의 이유를 나름 생각해 보았다.

#5. 꿈을 꾸는 것이 그다지 비현실적이지는 않다. 상대적으로 꿈이 현실화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4. 실패한다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충분히 professional 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비교적 다시 기회를 얻기 쉽다.

#3. 꿈을 꾸는 것이 외롭지 않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유학 온 한 Stanford 학생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여기는 학교 전체가 start-up 열기네요. 나도 동참하지 않으면 낙오되는 느낌이 날것 같아요”

#2. 벤처의 운명이 흑백 논리로 대박과 쪽박만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종류의 매력적인 소박, 중박의 길들을 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M&A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벤처에 초창기 멤버로 입사한 사람들은 그 회사가 중박만 되어도 획기적인 인생의 전환을 꾀할 수 있다. 이는 반드시 금전적인 보상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커리어상의 퀀텀 점프를 포함하는 의미이다.

#1.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포인트: 벤처에서 일하는 것이 커리어를 망치는 길이 아니라는 점!  벤처업계에 대기업 못지 않게 똑똑한 top class 인재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배우는 것이 대기업 못지 않게 큰 배움이 된다. 게다가 자신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기회까지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업계에서 인정해준다.  미국사회의 커리어에서는 reference check 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사람을 채용할때, 어디 출신이라는 간판 보다는 같이 일했던 동료/상사등의 평가/추천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음 이야기:  Episode 3 –  한국 사람이 미국에 건너가서 VC 펀딩을 받는것은 가능한가?

실리콘밸리 비밀일기 Ep 1: Startup Diary란?

이 블로그 위해 우리 부부는 (문지원 & 호창성) Startup Diary 라는 도메인을 사용하기로 했다.  한국말로는 실리콘밸리 비밀일기라 부를 생각이다.

잠깐 배경 설명을 하자면, 두 사람 모두 한국에서 나고 자란 소위 말하는 토종 한국인으로서 두려움에 떨며 늦은 나이에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난 것이 5년전이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1년 후 석사과정을 마친 문지원 대표가 실리콘밸리로 날아와 덜렁 현지에서 창업을 한것이 4년전인 2007년 가을이다.   2008년에는 ViKi라는 서비스를 런칭하였고, 그 해 MBA 과정을 마친 나는 ViKi 에 풀타임으로 Join하여 문지원 대표와 함께 ViKi 를 운영하게 되었다.  2012년초 현재 ViKi 는 전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매월 1천만명의 유저들이 찾는 사이트가 되었고,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다. ViKi 는 2007년 창업이래 현재까지 Silicon Valley 벤처캐피탈, 엔젤투자자, 그리고 여러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총 2천5백만불 가량의 투자를 유치하였다. 또한 회사의 성장과 함께 미국인 CEO 를 영입하고, 싱가폴에 R&D 오피스를 구축하여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된 Product, Engineering, Marketing팀을 만들어왔다.

이 과정 동안 우리가 배운점들을 정리하고, 공유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가지고자 하는 것이 이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동기이다.  비밀일기라 이름 붙임은 뭐 대단한 비밀이 숨어 있어서는 아니다.  이는 우리가 실리콘 밸리에 풋내기 창업가로서 첫발을 디뎠을때의 미숙함과 설레임이 마치 어릴적 읽었던 “비밀일기”라는 소설속의 사춘기 소년의 풋풋한 설레임을 연상케하여 떠올린 이름이다.

2007년 가을, 스탠포드 대학에서 도보5분 거리에 위치한 허름한 가정집에서 창업을 하며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창업문화(?)를 알리겠다며 미국친구들을 불러놓고 고사를 지내던 사진과 함께 Episode 1 을 마친다.

미국 친구들이 기절할까봐 가짜 돼지머리를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부두교 바라보듯 신기하게 쳐다보던 그들의 눈빛이 기억난다.